꽤 넓은 욕실 안에서 진우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고정된 샤워기의 물줄기를 조용히 받고 있다가 손을 뻗어 샤워기의 꼭지를 돌려서 잠갔다. 진우를 향해 세게 내리치던 물줄기는 서서히 약해져 가더니 물방울이 뚝, 뚝, 하고 바닥을 향해 떨어지다가 이내 멈추었다. 어쩌다가 내가…. 샤워기가 고정되어있는 벽에 손을 짚곤 고개를 푹 숙인 진우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면 좋을지 몰랐다. 자신은 분명 평소처럼 일하다가 어느 사람과 부딪치는 것으로 인해 대걸레로 바닥을 닦아 헹구고 있던 물을 거의 온몸에 흠뻑 맞게 되었고, 그 덕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서 자신을 젖게 한 장본인을 향해 화를 냈다. 아니, 화냈다기보다는 분노했다는 게 맞으려나…. 아니, 그게 그거 아닌가? 깊게 고민하던 진우는 그게 핵심이 아니잖아, 라는 것으로 넘어갔다. 그 물이 옷에 스며들기까지 해 추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재채기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주인장이 감기 걸리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 것이 좋겠다며 제 등을 떠밀어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주인장 아들의 수발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으면서 주인장의 아들, 김록의 뒤를 따라갔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제 옷으로 스며드는 물에 오들오들 몸을 떨었고 서서히 걸음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을 눈치채 제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고 그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는데 외투를 걸친 채 있던 자신을 방에 있던 욕실로 데려가서는 감기 걸리기 전에 씻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다 하고 나면 밖에서 기다릴 테니 욕실에서 나가는 그에 진우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온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어느 정도 물로 몸을 씻으면서 비누칠을 한 덕일까,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달콤하게 느껴지는 비누 향이 났다. 제 몸에서 나는 비누 향을 맡으면서 언뜻 멜론의 이미지를 떠올린 진우였지만 시간을 꽤 지체한 거 같다는 생각에 과일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내 버리고 물에 젖어있는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털 털어 물방울이 덜 떨어지게끔 닦고 서둘러 몸에 물기를 닦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에서 나오자 언제 준비한 것인지 모를 옷과 슬리퍼가 보였다. 준비된 옷을 빤히 바라보던 진우는 어차피 바로 자신의 방으로 가서 제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는 생각에 준비되어있는 옷을 입지 않고 전라인 상태로 목욕 가운만 걸쳐 입곤 꼼꼼하게 제 몸을 감싸 끈을 단단히 묶어선 리본으로 만든 후에 준비되어있던 옷을 두 손으로 들어 슬리퍼를 신곤 그가 있을 방으로 갔다.


"아, 다 씻었어?"


진우가 다 씻기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침대에 앉아있던 김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에 폐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두 손에 들고 있던 옷을 건네주었다. 진우가 옷을 건네주자 그는 얼떨결에 받으면서 멍하니 있다가 당황해하며 진우에게 다시 옷을 건네주려고 했다. 이거 입으라고 준 건데 왜 안 입은 거야? 다시 입으라는 듯 자신을 향해 옷을 건네려는 그에 진우는 두 손을 등 뒤로 숨기곤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방에 가서 제 옷으로 입으면 되는 거고, …혹시 젖었던 제 옷,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문뜩 욕실 밖에 내놨던 메이드 복과 그 외의 것이 사라진 것을 떠올린 진우는 욕실에 없으니 혹시 방에 있나, 하고 방을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어 보이는 것이 없어 건드렸을 사람이 철수밖에 없으니 그에게 옷의 행방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는 알고 있는지 진우에게 해답을 주었고 그에게서 해답을 듣곤 진우는 황당해 했다.


"옷을 주셨다고요? 다른 하인… 한테?"


진우는 자신에게 말하지도 않고 멋대로 제 옷을 가져가게 한 김록에 화가 났지만 애써 화를 삭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는 마침 제 방을 지나치던 하인을 붙잡아 젖은 제 옷가지를 세탁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래 제 일인데 멋대로 다른 사람한테 부탁한 그에 당장에라도 낼 거 같은 화를 참기 위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주인장의 아들이야. 참자. 참아야 해….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당신 때문에요. 이렇게 단답형으로 말하고 싶은 진우였지만 대답도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인지, 아니면 귀찮다고 느낀 것인지, 이만 방으로 가보겠다고 슬리퍼를 벗어 다행히 방에 있는 낮은 굽의 제 구두를 신곤 방을 나서려 했다.

덥석, 하고 제 손을 붙잡은 김록만 아니었다면 나설 수 있었는데 저를 붙잡은 그에 진우는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예요. 주인장의 아들이니까, 의미 없는 존댓말을 꼬박꼬박 하면서도 자신을 째려보는 듯이 바라보는 진우에 그는 움찔하며 침을 꼴깍, 삼키더니 아, 아버지한테 얘기 못 들었어? 내 수발, 들라고….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얘기하기는 했지만 둘밖에 없는 방에 혼자 얘기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기에 그의 말을 들은 진우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떠올렸다. 그랬지 참…. 잠시 잊고 있었던 주인장의 부탁, 이라기보다는 지시라는 것이 맞겠지…. 잊고 있던 지시를 떠올린 진우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그에게 붙잡혀있던 손을 빼내곤 방문 고리를 잡았다.


“어차피 지금 목욕 가운밖에 안 입고 있고, 일할 때 입는 복장도 어느 누구 씨가 세탁을 부탁해서 없으니까 방으로 가서 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올게요.”


오늘부터 당신의 수발을 드는 거라면 아까의 옷이 아닌 거로 입고 오더라도 참아주시면 좋겠네요. 차가운 어투였지만 어느 정도의 예의를 지키며 진우는 방을 나섰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히자 김록은 멍하니 듣고만 있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려 들고 있던 옷을 침대에 내팽개치곤 서둘러 방문을 열어 진우의 손을 붙잡았다. 처음 붙잡았을 때보다 세게 잡은 덕에 진우는 읏,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진우는 화를 내는 대신 그에게 뭐냐는 듯이 짜증스럽게 바라보았고 이에 그는 움찔하다가 애써 진우의 시선을 피해 진우를 다시 제 방으로 데려와 문을 단단히 잠갔다. 방을 나서지 못하게 잠근 듯해 보였지만 어차피 안에서 잠글 수 있고 열 수 있기에 그래 봤자 소용이 없는 짓일 텐데, 라고 생각하던 진우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서 나가려 했지만, 꽉 붙잡혀있는 데다가 같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힘에서 달리고 있어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가다시피 가던 진우는 내팽개치는 듯이 의자에 앉히게 되었고 그의 행동으로 인해 목욕 가운이 살짝 풀어지면서 새하얀 쇄골을 보였다. 의도치 않게 진우의 쇄골을 보이게 한 그는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뭐라고 좋으니까 가운 안에 뭐 좀 입어, 하고 한 손으로는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리는 용으로 남은 한 손으로는 입으라는 손짓을 했다. 멋대로 행동해서는 멋대로 시키는 그가 짜증스러웠지만, 그의 수발을 들라는 주인장의 지시를 받은 터라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놓은 후, 침대로 걸어가 그에게 건네줬던 그의 옷으로 추정되는 옷을 집어 들었다. 욕실에서 갈아입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욕실로 가서 갈아입기도 귀찮았고 가운을 입고 있으니 안에서 입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을 마쳤다.


‘속옷이 없는 게 아쉽네.’


하긴, 생판 남인 사람한테 속옷까지 빌려주지는 않겠지. 그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진우는 가운은 걸친 채로 처음엔 바지를 집어선 바지허리를 시작으로 두 발을 넣어 가운 안에서 바지를 입곤 웃옷을 입을 차례가 됐는지 가운이 벗겨지지 않게 꽉 묶어놨던 리본을 풀었고 가운의 끈을 둘로 나뉘면서 새하얀 맨살과 이곳에서 메이드로 일하면서 인지, 그전부터 운동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의 다져진 근육이 보였다. 씻고 나온 지 꽤 되었음에도 아직 물기가 있는 머리칼이 맨살에 닿으면서 차가운 물방울이 조금이지만 떨어지자 진우는 흠칫하다가 서둘러 뽁, 하는 효과음이 나는 듯이 옷을 입곤 김록을 바라보았다.


“…왜요.”


이제 옷을 입었으니 됐냐고 물으려던 진우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김록에 왜 그렇게 보냐는 질문을 짧은 한마디로 내던졌다. 진우의 질문에 그는 답할 정신이 아닌지 어버버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진우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여, 여자 아니었어…?! ……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며 태클을 걸고 싶었던 진우였지만 황당하다는 의미를 담은 한마디만으로 상황을 정리한 거 같아 입을 다물곤 입고 있었던 가운을 두 손에 쥐고서 욕실로 걸어갔다. 메이드 복 하나 입었다고 여자로 오해한 건가…. 부딪쳤을 때 내 목소리에, 외모만 봐도 남자라는 게 티가 안 나나? 조금 자존심이 상함과 동시에 기분도 같이 상하면서 욕실에 가운을 갖다놓고 올 동안 그가 상황 파악할 시간을 줄 명분으로 욕실에 조금 오래 있다가 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진우에 그는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방금 그, 녀석이… 남자고, 내가 남자의 쇄골을 보고 얼굴을 붉힌 거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겪은 일인지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진우가 욕실에서 나오면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 모르며 혼란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쥐어 싸맸다.


-

이다음에 진우는 특별한 마음없이 주인장 아들이니까 잘 대하도록 노력해야지, 라는 거로 하인으로서 역할 하려고 하고 록이는 복잡한 마음으로 진우를 하인으로서 두고 있다가 도시권 집으로 갈 날이 다가오니까 진우한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알아서 진우 데리고 가서 살면 안 되냐고 했으면 좋겠다.. 진우는 그럴 수 없다고 가족이 있다고 하는데 록이가 자기가 책임져주겠다는 프로포즈로 마무리!

왠지 3편 나올 듯^^;;; ☞안나옴

::3편:: 록이랑 진우가 도시권으로 가서 학교에서 지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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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쿠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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