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졌나?”

 

유라는 바로 앞에 놓인 카메라를 녹화 모드로 켜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녹화하는 화면이 앉아도 보일 수 있게 고정해놓고, 카메라의 맞은편에 자리 잡아 앉았다. 남이 찍어주고 그 영상을 보는 것은 익숙했지만, 스스로 찍는 영상에 자신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어색한 마음에 입만 우물거렸다. 아니, 어색한 마음보다는 꺼내야 할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 크겠다. 영상에서는 시간만 흐르고 입만 달싹이며 말하기를 주저하는 유라의 모습만이 담겨만 있었는데, 이내 결심을 한 모양인지 카메라를 향해 유라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한아, 나 내일 죽어.”

 

의외로 하려던 말을 내뱉으니 언제 말하기를 주저했냐는 듯 덤덤해졌다. 덤덤하게 내뱉은 자신에 놀랐던 것인지 유라는 휘둥그레져서 두 눈을 끔뻑여 보였지만, 오히려 덤덤해진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런 말은 우울한 마음으로 보이기보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게 이 영상을 볼 정한에게 좋을 테니까. 잠시 그늘져 보였던 유라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유일한 제자한테 모든 걸 알려주지 못하고 가버리게 됐네, 이런 스승이라 미안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는 스승이지만, 이런 스승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않을래?

유라는 가볍게 숨을 고르곤 진지하게, 화면 너머로 볼 정한을 향해 진심을 담긴 말을 꺼내 보았다. 부탁이란 꽤 긴 내용이었는지 입을 쉬지 않고 주절대었고, 정말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슬 웃어 보이는 유라였다. 털썩, 뭘 했다고 벌써 기력이 빠지는 느낌에 소파에 몸을 기대 고개를 들어 보이던 유라는 너한테 더 해줄 게 없네. 있다면, 이 집이랑 그동안 모아놓은 보물들이려나….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유라는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씨익 이를 들어 내보이며 웃어 보였다.

 

“그 보물들, 팔아도 좋고 서에 보내도 좋아. 내 추억이라 생각하고 보관해둬도 좋고.”

 

더 할 말이 없는지, 고민에 잠기던 유라는 여기서 더 말을 해봤자 질척일 뿐이고 영상에서는 좋은 모습, 웃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로 다가갔다.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겠네. 안녕, 내 하나뿐인 제자. 안정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녹화 영상은 끝났다. 마지막 말은 어떤 얼굴로 했는지 비춰지지 않은 채 말이다―….

 

 

 

“이게 뭐예요, 스승님..”

 

녹화 영상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는 까만 화면만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정한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문자로 연락을 했지만, 평소보다 답장이 늦는 것에 혹시 문자를 못 본 것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기계 안내음이 들려온 것에 뭐지 싶었다. 정한은 번호를 바꿨는데 말한 걸 깜빡한 것인가 했다. 하지만 스승인 유라의 집에 들어와 책상에 「꼭 봐」 남겨져 있는 쪽지와 같이 올려져 있는 테이프를 틀어보고 자신이 추측한 게 틀렸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해놓고 도망가는 게 어딨어요!”

 

스승인 유라에 대해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겐 가족 하나, 죽게 되면 장례를 치러줄 그 누구 하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소식을 통보해놓고 간 스승님을 원망했다. 자신을 제자라고 생각한다면, 마지막 가는 길 정도는 보게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어리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보면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죽음을 보는 것보다 하나뿐인 스승님이 어디서 죽게 될지 모르는 게 더 두려운데.’

 

정한은 입술을 질끈 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한심함에….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듯 껌껌하고,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집 안에 홀로 있던 정한은 이 적막감을 없애려는 듯 힘없이 손을 들어 다시 한번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은 다시 유라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켜졌는지 확인하는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정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화면 속에 나오는 유라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말하기를 망설이던 유라는 덤덤한 목소리로 죽는다는 소식을 내뱉었다. 방금 들었던 것임에도 지끈, 가슴이 아파왔다.

 

【유일한 제자한테 모든 걸 알려주지 못하고 가버리게 됐네, 이런 스승이라 미안해!】

 

밝게 미소 지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정한의 눈에는 유라가 애써 웃는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야 정한의 뛰어난 관찰력을 눈에 보고 제자로 받아들였으니 아무리 유라가 뛰어난 연기를 했어도 평소와 다른, 작은 차이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화면 속의 유라는 밝은 웃음이 어느새 쓸쓸한 웃음으로 바뀌며 이 영상을 보고 있을 정한을 향해 부탁 하나를 했다.

 

【너만은 날 괴도로즈면서 한 사람의 한유라였다는걸 기억해줘.】

【내 뒤를 이어서 괴도로 지내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아. 앞으로의 인생은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당연한 부탁하지 말아요, 스승님….”

 

당연한 부탁을 한 것도 그랬지만, 괴도로 지내와서 체력 하나만큼은 좋았을 유라가 많은 움직임을 보인 것도 아닌데 체력이 다한 듯 소파에 몸을 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죽음에 다가감을 느끼며, 정한은 먹먹해진 가슴을 움켜잡았다.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겠네. 안녕, 내 하나뿐인 제자. 안정한.】

 

보이지 않는 작별인사에 정한은 겨우 잡고 있던 마음이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주저앉았다. 그동안의 추억들로 가득한 유라의 집 안에서 지금 제 곁에 없음에도 있는 거처럼 느껴지는, 옅게 남아있는 유라의 냄새에 정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그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데, 그 모습을 누구에게라도 보이기 싫은 거처럼 바닥에 엎드려 두 팔로 얼굴을 가려내서 말이다.

 

 

 

#자신이_내일_죽을_것을_안다면_자캐는

이 해시는 정말 유라로 꼭 써보고 싶었는데 찌통나는거로 쓰네.....

쓰다가 눈물이 방울방울 나다 안 나다가 해서... 맞춤법검사만 하고 올려요!!

Posted by 쿠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