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것이라곤 산짐승들뿐인 어두컴컴한 밤에 어둠과 정반대의 새하얀 망토를 휘날리는 물체가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 물체의 정체는 괴도로즈. 그의 성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나이 또한 불명이다. 신원불명인 그가 괴도로 활동하고 지내며 특정한 보석만 훔치다 어느 언덕의 숲에 지어져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을 내려다보고 있는가, 그 이유는 미리 보석을 훔칠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저택의 경비는 삼엄한 데다가 저택에 사는 모든 지인을 알아보는 집사가 있어 변장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세탁소 직원이나 배달원으로 들어가 볼까 했지만, 모르는 사람 혹은 낯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저택의 구조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알게 된 것이라곤 겉의 주택 구조와 그들의 생활 패턴뿐. 결국 그는 그들이 자는 시각, 그나마 경계가 늦춰지는 늦은 밤에 저택을 찾아온 것이다.
"일단 찾아올 때마다 사람이 없어 보이는 방이 있었지?"
그는 제 품 안에서 총 같은 것을 꺼내더니 아무도 없는 방의 창문 길러져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서 나온 것은 갈고리-인형 크레인-였다. 갈고리는 굵은 나뭇가지에 뿌리내리듯 꽂혀내려 졌고, 단단히 박혀있는지 두 번 당겨보는 것으로 안전 확인을 한 그는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길게 늘어났던 줄은 한 번에 줄어들었고, 그 속도가 꽤 빠를 터인데 그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다 도착 지점에 다다르자 백 텀블링을 마무리 지으며 굵은 나뭇가지 위에 안착했다. 사용했던 총을 원상태로 복귀한 뒤, 다시 품 안에 넣어두었다.
"자, 이제 제대로 된 탐방을 시작해볼까?"
그는 나뭇잎들에 몸을 숨기고, 창가로 다가가면서 손에 잡히는 작은 손전등의 빛에 의지해 문을 잠가놓은 고리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기 나섰다. 언뜻 봐선 어디에 구멍을 뚫어서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 창문의 고리 모양새를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바싹 붙었던 그는 고정되어있어야 할 창문이 그대로 밀려나자 제 의지가 아닌 앞구르기를 하면서 방 침대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으으, 내 실수다. 다른 때도 경계가 삼엄하니까 모든 창문이 잠가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버렸어. 하지만…."
고리는 언뜻 봤을 땐 잠가져 있는 거처럼 보였는데? 그는 의아함을 느끼며 구른 덕분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부작, 들려선 안 되는 소리에 그는 흠칫하며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틀었다. 사람이 없을 텐데 대체 누가….
냐~
"어?"
소리를 낸 것은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모를 고양이었다.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빛을 받아 어느 색의 고양이인지 잘 볼 수 있었다. 어느 종류인지까지는 그 또한 모르겠으나, 밤하늘과도 같은 윤기를 가진 털에 달빛을 받아서인지 더욱 반짝이는 금빛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도도한 고귀함을 뽐내는 고양이에 그는 슬 입꼬리를 올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로 앉아서 이리오라는 듯이 한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그를 살피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바라보더니 도도한 걸음을 내디디며 그의 앞까지 찾아왔다.
"착한 고양이구나?"
"-대단한 사람이네요."
"!!"
그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순간,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방에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지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양이는 쓰다듬던 손길이 멈추자 그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어느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고양이가 들어간 어둠 속에서 하나의 검은 인영이 앞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자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표정에 제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제 고양이는 아무한테나 다가가지 않거든요. 특히, 당신 같은 도둑에게."
도둑이라는 단어를 말한 것만이 아니라, 이를 강조한 것에 그는 감정이 팍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두 눈을 꾹 감고 감정을 다스리는 듯하더니 픽, 웃으며 남자를 당당히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난 그냥 좀도둑과는 달라."
그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창문이 쾅 하고 닫히며 철컥,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남으로 방 안의 모든 문-이라고 해봤자 창문 하나와 방문 하나지만-이 잠기어버린 것이다. 그는 두 손을 만세 하듯 올려 보이며 어떠냐는 듯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난 괴도거든~."
남자는 그의 등장과 솜씨에 놀란 건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서 있기만 하다가 손뼉을 쳤다. 예상외의 반응이라 그는 두 눈을 끔뻑이다가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해서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은 방의 불까지 거리가 있어도 킬 수 있었지만, 자고 있을 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들어올 것이 분명해 그런 거라면 사람들 따돌리는데 귀찮아질 뿐만 아니라 조용히 주택의 구조를 파악하고 가려는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그 괴도로즈, 맞죠?"
"와~ 알아줘서 영광인걸?"
아직 검은 그림자에 가려져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명백히 그와 기 싸움을 하는 것은 분명했다. 여러 경찰을 상대로 보물을 훔쳐간 경험과 그의 감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없을 줄 알았던 방에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 예상 미스다. 이다음은 어떡하면 좋을까. 여차하면 수면 가스를 뿌려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얼굴의 위치가 정확히 보이는 것도 아니라 손수건으로 제 입을 막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방독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방 안 가득히 수면 가스 수류탄을 함부로 내놓을 수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남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덕분에 창문 사이로 비추는 달빛으로 남자의 얼굴이 보였고, 남자는 어떻게 봐도 어림잡아 10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 정돈된 남색의 흑발 하며, 이 어둠에 눈부시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는 감정을 쉽게 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설명이 더 알아듣기 쉬우려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서지기 쉬울지도 모르지.'
그는 남자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그 잠깐 사이에 알아내지 못했을 남자의 왼쪽 눈 밑에 있는 눈물점을 발견했다. 눈 밑에 눈물점이 있으면 눈물이 많다고들 하니까. 그걸 믿는 쪽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관찰에 도움이 되니 알아두고 있는 그의 지식이었다.
"도련님이신가 보네?"
남자의 관찰을 그만두고,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일단 말을 던져보았다. 이런 큰 저택에 10대로 보이는 남자가 그냥 들어 올 리는 없으니까. 이 저택의 아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 저택의 주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건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 갑자기 온 손님 중 하나라는 얘기밖엔 설명이 되지 않을 거 같았다. 도련님이냐는 그의 발언에 남자는 슬 웃더니 원래 이 시간대라면 입어야 할 잠옷이 아닌, 마치 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 듯 단정하게 차려입은 복장으로 떳떳하게 서보였다.
"제 이름은 안정한. 잘 새겨두시면 좋겠네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당신과는 여러 번 마주칠 기분이니까요. 남자, 정한의 진지하고 도전하는 발언에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좋아, 네 도전 받아들일게.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그는 한순간에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씨익, 지으며 방 안에 펑, 하고 큰 소리가 나게 연막탄을 터트려 정한의 시야를 가려냈다. 정한은 앞이 안 보이긴 했지만, 이 소리에 이 방으로 달려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이 집의 구조를 알지 않는 이상 일부러 사람 막힐 곳으로 달려갈 리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린 정한은 그가 잠갔던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잡았다..!"
"힉!?"
이제 막 창문에서 나가려는 그의 발목을 잡은 정한은 꽤 놀란 듯 당황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그보다 생각보다 가는 발목에 흠칫했다. 그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정한이 무언가 생각에 잠긴 틈을 타 정한의 가슴팍을 향해 발을 있는 힘껏 차는 것으로 발돋움을 해 창문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공중으로 뜀과 동시에 정한을 향해 몸을 틀어 싱긋 웃어 보였다.
"고마워, 덕분에 잘 도망치게 됐는데? 아쉽지만.. 여기는 포기할게. 볼 수 있다면 다음에 또 보자고, 어린 도련님?"
듣는 사람은 얄미울 목소리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멋진 미소와 함께 말하는 그에 반할지도 모른다. 그의 발길질에 밀어져 넘어진 정한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꽉 쥐고서 그가 유유히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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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마지막으로 다 쓴게 두달 전이라..... 읽게 되면 또 오래 걸릴까봐,,, 고칠게 많아질까봐,,,,, 일단 맞춤법 검사만 하고 올립니다..!
사실 정한이 도련님 보고 싶어서 쓴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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