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두득,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밖의 상황만 보면 비가 우수수 내리고, 바닥을 물로 질퍽해져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지라 밖에 나돌아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마리네뜨고 말이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마리네뜨?"
"로맨스 소설! 마음이 절절해지는 이야기는 이런 날에 읽어야 이입이 잘 되거든~."
"무슨 이야긴데?"
"어느 왕국에 사는 공주님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고양이를 줍게 되는데 마음에 들어 키우다 보니 그 고양이가 이웃 나라 왕자님이 잃어버렸던 소중한 고양이였다는 이야기야!"
"...판타지 소설 아니야?"
"티키는 뭘 모른다니까! 이런 게 바로 로맨스라고―."

똑똑-
어? 창문에서 굵은 빗방울을 치는 소리와 다른 소리가 나자 마리네뜨는 티키와 대화하던 것을 멈추었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다시 책에 집중하려던 마리네뜨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이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또 들리자 책을 덮곤 창문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으로 다가서자 창문에 보인 것은 낯설지 않은 커다란 검은 물체였다. 검은 물체를 확인한 마리네뜨는 긴 한숨을 내쉬곤 검은 물체를 향해서 말을 건넸다.

"블랙캣,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안녕~ 공주님? 추워서 그런데 문 좀 열어주지 않을래?"

마리네뜨의 방 창문을 두들긴 것은 블랙캣이었다. 자신의 질문에 능글맞은 인사로 대신 답하고, 비를 맞아 저 젖은 몸을 감싸며 웃어 보이는 블랙캣을, 마리네뜨는 들여보내 줘야 하나 망설였다. 허나 제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이 토라지게 했는지 마리네뜨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가버렸다. 마리네뜨가 창가에서 자리를 뜨자 블랙캣의 귀가 축 늘어졌다. 꼬리처럼 보이는 벨트 또한 왠지 모르게 축 처진 거처럼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똑똑-
시무룩하던 블랙캣은 가까이서 무언가 두들겨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건을 몇 장 손에 들고서 블랙캣을 올려다보고 있는 마리네뜨와 눈을 마주치게 됐다. 마리네뜨는 손을 뻗어 창문을 열곤 블랙캣에게 말을 건넸다.

"추우니까, 일단 들어와요."

마리네뜨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블랙캣은 환해진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마음으로 마리네뜨의 방에 들어서려던 블랙캣은 여전히 뻗어져 있는 마리네뜨의 팔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가려는 입구에 마리네뜨의 팔이 너무 정중앙에 있어서 그냥 들어가기가 난감했다.

"안 잡고 뭐 해요, 블랙캣."

마리네뜨는 멀뚱멀뚱하게 있는 블랙캣을 의아해하는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마리네뜨의 발언의 의미를 몰라 들어가기를 망설였던 블랙캣은 뒤늦게 편하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려던 것을 알아내었다. 마리네뜨의 몰랐던 신사적인 모습에 블랙캣은 두근거림을 감추며 고마워, 공주님? 웃어 보이곤 저를 향해 뻗은 마리네뜨의 손을 잡아 유연하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블랙캣은 레드카펫을 깐 듯 수건이 나란히 깔린 것에 휘둥그레졌다. 블랙캣은 깔린 수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공주님, 이게 다 뭐야?"
"빗물 때문에 괜히 미끄러져서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결론은 날 위해서, 이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던 거야? 공주님…! 감동 받았다는, 울망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블랙캣에 마리네뜨는 괜히 쑥스러워져 그런 거 아니에요! 바닥이 젖으면 부모님이 오해할까 봐 깐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반박했다. 그런 마리네뜨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블랙캣을 알겠다며 능글스럽게 웃어 보이곤 수건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수건의 끝 지점에 도착한 블랙캣은 침대 옆에 위치한 소파 같은 곳에 자리 잡아 앉았고, 주위를 둘러보다 읽다 만 것인지 펴진 채로 책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리네뜨가 무슨 책을 보던 중이었는지 궁금증이 유발됐는지 블랙캣은 슬쩍 손을 뻗어 펼쳐진 책 안의 내용에 시선을 두었다. 공주, 고양이, 왕자, 대표적인 단어로 꼽히는 것들만 겨우 봤을 뿐인데 들고 있던 책이 제 손에서 빠져나가자 블랙캣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책을 뺏어 제 침대에 다시 갖다두는 마리네뜨를 부루퉁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런 얼굴 해도 소용없어요."

마리네뜨는 단호하게 뺏은 책을 건네주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말하며 블랙캣의 머리 위로 툭, 수건을 얹고는 결을 따라 젖은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긴 수건에 시선이 가려져 마리네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냥하게 어루만져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마리네뜨의 웃는 얼굴이 자연스레 상상되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블랙캣이었다.


"다 됐어요!"

마리네뜨의 손길이 떨어졌음에도 블랙캣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마리네뜨는 블랙캣? 조심스레 부르며 블랙캣의 머리에 얹혀놨던 수건을 걷어보았다. 수건을 걷으니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무방비한 상태로 곤히 잠들어버린 블랙캣의 모습이 눈에 비치자 마리네뜨는 당혹스러웠다.

"많이 피곤했던 건가…?"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같은 영웅으로서 잠깐 사이에 피로가 몰려오면 잠들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며 블랙캣의 옆으로 자리 잡아 앉는 마리네뜨였다.
평소랑 다르게 말이 없으니까, 꽤- 멋있어 보이네.
옆에 앉아 조용히 자는 블랙캣을 찬찬히 살펴보던 마리네뜨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흠칫하더니 당황해하며 블랙캣에게 등을 돌리곤 외쳤다.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한텐 아드리앙 뿐이라고!!"

제 두 손을 뺨에 갖다 대고 쫙쫙, 소리 나게 치고 나서야 정신 차렸다는 듯이 다시 블랙캣을 향해 몸을 튼 마리네뜨는 블랙캣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블랙캣을 깨울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마리네뜨는 블랙캣의 어깨를 감싸 안는듯하더니 그대로 제 무릎에 눕히게 했다. 말 그대로 마리네뜨에게서 무릎베개를 눕게 된 블랙캣이었다. 블랙캣 나름대로 피곤해서 여기에 온 게 아닐까? 보잘것없어 보이는 제게서 위안을 얻으려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리네뜨는 슬 웃으며 블랙캣의 목에 달린 방울을 톡, 하고 건드렸다.

"행운인 줄 알아. 내 무릎은 아무나 줄 수 있는게 아니니까. 알겠니, 야옹아?"

블랙캣이 들을 리 만무할 것을 알면서도 마리네뜨는 곤히 자는 블랙캣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듯 몇 번 쓰다듬곤 침대에 놓았던 책으로 손을 뻗어 독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 속의 고양이에 지금의 블랙캣을 대입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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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쿠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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