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 페도합작 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이치마츠는 책상에 앉아 공부에 열중했다. 종이를 팔락이며 쓰싹쓰싹, 하는 연필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때,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자취생활에 혼자 집에 있던 이치마츠는 뭐지. 부모님이 보낸 택배인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오래 앉아서 공부하느라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켜며 문을 향해 걸어가던 이치마츠는 덜컥,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문을 열어 보였다. 안녕, 이치마츠. 오랜만이네? 택배 아저씨라고 생각했던지라 문앞에 있는 사람이 생각했던 쪽과 다른 것에 이치마츠는 놀랐는지 졸린 듯 반쯤 감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모, 무슨 일로…."
이치마츠의 집에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친척, 이치마츠의 이모였다. 빙그레 웃어 보이며 인사하던 그녀는 곧바로 울먹이며 이치마츠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치마츠, 이모 부탁 좀 들어줘!! 갑작스럽게 찾아와서는 부탁을 들어달라고 울먹이는 그녀에 이치마츠는 당황하더니 부탁이 뭔데 그러시냐며 물어보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치마츠의 손을 천천히 풀어선 몸을 틀어 문 뒤에 있는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끌어 보여주었다. 그 무언가를 다름 아닌 유모차에 곤히 자는 남자아이였다.
"오늘 하루만 우리 애 좀 봐줄 수 없을까, 하고…. 안 될까?"
모처럼의 주말이니까 밀린 과제를 마무리하려 했는데, 애를 봐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이치마츠는 난감했다. 이치마츠는 자취생활만으로 벅찬데 혼자 애를 돌보기까지 하면 무리가 있다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거절하려 했다. 이치마츠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았는지 그녀는 보통 애들보다 얌전해서 돌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설득하며 네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사정사정하며 불쌍한 사람처럼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움찔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피할 수가 없어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짚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데리고 가실 건데요."
언제 데리고 갈 거냐는 이치마츠에 그녀는 돌봐줄 거라며 눈을 반짝였고 이치마츠는 그럴 테니 질문에 대답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저녁 먹기 전에는 올 테니 그동안 잘 부탁한다며, 이제 3살이 됐는데 평소에도 얌전하게 지내고 이치마츠랑 얼굴이 닮았으니까 낯설어하지도 않을 거야. 갑작스럽게 일이 들어와서 곤란했는데 고마워. 이치마츠의 두 손을 잡으며 미소 지어 보였다. 이치마츠는 그런 상황이나 말이 낯설었던 것인지 괜찮다며 주의할 사항이나 말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처음 돌볼 이치마츠에게 친절하게 주의사항을 알려줬으며 정 모르겠으면 전화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아이, 카라마츠를 이치마츠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렇게 이치마츠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낼 거란 생각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 * *
유모차에서 자던 카라마츠를 두 손으로 들어 제 침대에 눕혀놓고, 유모차를 집에 들였다. 유모차와 함께 딸려왔던 카라마츠의 물건을 거실에 두고 나서야 이치마츠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한시름 놓으며 시계를 본 이치마츠는 벌써 점심시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아침이라기에도 애매한, 이르지 않은 시간에 와서 카라마츠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받았으니 점심시간이 다가올 만도 했다. 점심을 먹고 카라마츠가 자는 동안 과제나 마무리해야겠단 생각을 하며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크덕
"…?"
식탁에 먹을 준비를 해둔 후, 간단하게 인스턴트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으로 다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치마츠는 어디선가 들리는 쇳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달라진 것은 없어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고 넘어가려던 이치마츠는 띵, 하고 완료됐다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소리와 함께 우당탕하고 울리는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 큰 소리가 들린 방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이, 이게 뭐야…!"
큰 소리가 들린 곳은 다름 아닌 이치마츠의 방이었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방 상태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고 있었던 아이, 카라마츠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에서 깨어 이치마츠의 방을 쓰레기장처럼 어질러놓고 있었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이걸 다 정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드는 거야…. 이치마츠는 골치 아파하며 머리를 짚다가 바닥에 찢어진 종이 한 장에 시선을 두었다. 잠시 말이 없던 이치마츠는 재빨리 제 과제물이 있던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고 과제물이 있는 책상에 가까이 있는 카라마츠가 해맑게 웃으며 펼쳐진 책과 과제물의 종이를 꾸깃꾸깃하게 잡아서 뜯으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안 돼!!! 이치마츠는 자신의 과제물이 더 망가지기 전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잽싸게 카라마츠를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이치마츠에게 들린 카라마츠는 멀뚱멀뚱해 하다가 자신을 안아 들은 이치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이치마츠는 씩씩거리며 카라마츠를 놓지 못한 채 눈동자만 굴리며 자신의 과제물이 안전한지 확인했다. 과제물은 다행히 안전하긴 했으나 과제를 하는 데 필요해서 빌려온 책들이 중간중간에 찢겨 있고 젖어있는 것이 보여 이치마츠는 다시 골치가 아파졌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으니 이치마츠는 망가진 책을 새로 사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도대체 어디가 얌전하다는 거야!!"
속으로 외쳐야 할 분노를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분출해버린 이치마츠는 뒤늦게 자신이 소리친 것을 알아차리고 위험함을 느끼며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두자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안 우나 보네. 안심하자마자 카라마츠는 바로 울상이더니 빼액─!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자신의 불찰이었기에 이치마츠는 불평조차 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며 카라마츠를 달래는 것에만 임했다.
"드디어… 달랬다……."
이치마츠는 한순간에 폭삭 늙어버린 얼굴로 피곤함에 절어있었다. 우는 카라마츠를 겨우 달래 제 품 안에 꼭 안겨있는 채로 다시 자게 해두었고, 한 손으로 자는 카라마츠를 겨우 받힌 채 자신의 방을 치워낸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침대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침대에 있던 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제 몸을 낙하하는 것으로 바닥에 착지해 방을 휩쓴 거였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제 식사를 생각해내게 됐다. 다 돌리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났으니 식었겠지. 다시 돌리긴 귀찮은데. 머리를 긁적이던 이치마츠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에 있던 소파에 자신의 품에 안겨 자는 카라마츠를 내려놓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려 했지만, 이치마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옷자락을 꽈악 쥐어 잡고 있는 카라마츠에 소파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엔 당황하다가 끙끙거리며 카라마츠를 떼려 했다. 카라마츠를 겨우 재워놓았는데 그렇게 때어내려다가는 잠을 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조그만 게 왜 이리 힘이 세!"
결국, 탈진한 이치마츠는 거친 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간단한 점심을 먹으려던 것은 어느새 간식 시간으로 가 있었고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음식이라도 먹고 싶다는 배고픔에 카라마츠를 제 허벅지에 앉힌 채로 자리에 앉아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것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 * *
"엉아. 엉아-."
점심을 먹고 상을 치운 뒤, 카라마츠를 한 손으로 받힌 채 부들부들 손을 떨며 양치질을 마친 이치마츠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기 딸려서 더는 못 움직여. 무리야. 소파에 추욱, 몸을 늘어트렸다. 그대로 잠시만 쉬자, 그런 뒤에 과제 하러 가자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던 이치마츠는 엉아, 엉아, 하고 자신을 호칭하는 듯한 어린 남자애의 목소리와 옷자락이 당겨지는 느낌에 여기서 눈을 뜨면 체력 낭비다.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모른 척 눈을 꾹 감았다.
"횽아! 횽아─!"
자신이 이렇게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치마츠에 심통이라도 난 것인지, 카라마츠는 옷자락을 늘어트릴 듯이 잡아당기는 기세를 보였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이 작은 아이의 힘에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 거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힘으로 몸이 흔들리는 착각을 받으며 이래서는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거 같아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며 내려다보았다.
"뭐야."
나는 잠깐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으니 빨리 네가 부른 이유를 말하라는 듯이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이치마츠였다. 아직 어린 카라마츠가 그 뜻을 이해할 리가 없겠지만…. 깨어난 이치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반짝, 눈이 빛나더니 이치마츠의 옷자락을 붙잡은 것으로 이치마츠에게 더욱 찰싹 달라붙어선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잘 생겨떠!"
"…하?"
기껏 휴식 취하려던 자신을 깨우려던 이유가 겨우 잘 생겼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에 이치마츠는 황당하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아니, 자신은 카라마츠와 친척이면서 얼굴이 꽤 닮아있었기에 제 얼굴을 보고 잘 생겼다고 하는 것이 퍽 우스웠다. 나보고 잘 생겼다고 하는 걸 보면 자기 얼굴 보고도 잘 생겼다고 생각하겠네. 나르시스트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겠다고 덧붙이며 이치마츠는 픽 웃어 보였다. 이치마츠의 웃는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 또한 기분이 한껏 좋아졌는지 활짝 웃어 보이며 이치마츠의 무릎 위에서 방방 날뛰었다.
-Epilogue-
카라마츠를 데리고 오겠다던 카라마츠의 엄마, 그녀가 노을이 질 무렵에 이치마츠의 집에 도착했다. 대학생이라지만 처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처음일 이치마츠가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것이 불안했던 그녀는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 이치마츠의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였다. 혼자 사는 집인데 문 좀 잠가놓지. 걱정스러워하며 그녀는 신발을 조심스레 벗고서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로 들어선 그녀는 목격한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바닥에 어질러진 장난감과 책들에 저것들을 어떻게 치워, 하는 걱정스러움이었으며 두 번째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일이었다. 많이 놀기라도 한 것인지 피곤해서 곤히 잠든 카라마츠와 카라마츠를 재우려고 옆에 같이 누워있던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만 담요를 덮어준 채, 한 손으로 카라마츠를 토닥이며 재우려던 것이 자신도 피곤하여 잠이 든 모양이었던지 서로 마주 보며 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카라마츠를 돌보는 게 힘들기는 했어도 즐거웠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이치마츠의 방에서 이불 하나를 가져와 이치마츠에게 덮어준 후, 고생한 이치마츠를 위해 솜씨 좀 발휘해볼까! 팔 벗고 요리할 준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