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치] 꿈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이 길을,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어두운 공간 속에 이치마츠는 걸어가고 있다. 뒤로 가봤자 똑같은 길일 테고, 앞으로 가면 뭔가 나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이치마츠는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보랏빛 후드티 한가운데에 있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던 이치마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건 아마도 어둠만이 펼쳐졌던 공간에 어둠과 다른 것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두웠어도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뭔가 바뀌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계속 걸어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바닥에 뭔가 발바닥이 눌리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간지러운 듯한 까끌까끌한 느낌도 받았다. 그렇게 아픈 건 아닌지라 발을 꼼지락거리니 발가락 사이사이로 작은 알갱이가 들어오는 거 같았다. 위험한 건 아닌 듯해서 쭈그려 앉아 손에 집어 만져보니 작은 돌과 함께 부드러우면서 까끌까끌한 게 느껴지는 것이 꼭 모래 같았다. 어두우니까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지만.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더 앞서 나갔다. 모래처럼 까끌까끌함이 느껴진 것과는 다르게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액체가 이치마츠의 발을 감쌌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차가움에 이치마츠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액체에 담근 발을 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차가운 것에 익숙해져 갈 때쯤에, 이치마츠는 다른 발도 천천히 담갔다. 오래 담그고 있었던 거 같은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보아 딱히 들어가도 상관없는 듯한 액체인 거 같았다. 마치 물처럼 투명하고,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액체 같았다. 어두운 공간이라 형태가 보이지도 않고, 물이라고 말하기에도 모호한 액체에 이치마츠는 가만히 발만 담그고 있다가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바닥은 점점 가라앉고, 물로 추측되는 액체의 깊이는 점점 깊어지는지 이치마츠의 몸이 조금씩 잠기게 되더니 어느샌가 이치마츠는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와 버렸다. 그 덕에 이치마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 속에 몸을 맡긴 듯 더욱더 깊게, 어디가 끝인지 모를 곳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좀만 힘을 주면 이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았지만 깊숙이 들어갈수록 이치마츠의 정신은 흐릿해져만 갔다.
‘졸려….’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것이 졸려서 그러는 것이라 확신한 이치마츠는 숨도 제대로 쉬어지는지 안 쉬어지는지도 모른 채, 반만 뜨고 있던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이 들려고 했다. 공중에서 들리던 시끄러운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마츠! …이- 츠!
‘시끄러….’
잘 들리지 않던 두 팔을 들어 두 손을 제 귀로 가져와 시끄러운 말소리가 잦아들기를 바라며 꽈악, 눌러 막았다. 이제 제 귀에 제 잠을 깨우려 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지. 이대로 자게 내버려두기를 바라며 다시 잠에 빠지려던 이치마츠였지만 이치마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저 멀리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아까보다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깊이 자려는 모양인지 더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몸을 웅크리고서 두 눈을 꾸욱, 감았다. 절대로 뜨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런 의지로 잠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았던 이치마츠였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차갑게 느껴졌던 물 같은 액체 안에서 따뜻한 온기와 함께 빛이라고는 결코 찾아볼 수 없던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밝은 빛이 자신을 향해 비추는 것이 느껴져 무엇이 자신을 향해 비추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눈을 뜨려 했으나 자신을 향해 비추는 빛의 세기가 너무나도 강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면서 다시 눈을 감게 되었다. 그리고….
"이치마츠!"
밝은 빛에 눈을 뜨지 못했다가 제 이름을 크게 부르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림과 동시에 번뜩 눈을 뜬 이치마츠는 제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살펴보는 듯했다. 여긴…. 낯설지 않은 장소였다. 자신의 집, 제가 언제나 자던 방 안이었다. 이치마츠! 정신이 들어? 자신을 향해 말하는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치마츠가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제 형, 카라마츠였다. 그를 지긋이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걱정 어린 얼굴에 뭐야, 하고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걱정이 어렸던 그의 얼굴은 어느샌가 안도감에 울 거 같이 바뀌었고, 이치마츠는 뭐냐며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치만… 방금 이치마츠…….”
카라마츠는 울음기가 묻어있는 목소리로,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꽤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해주었다. 제 형제들이 깨어나고 침구를 정리해 밥을 먹으려고 내려가 그도 잠에서 깨어 침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딱 한 명, 자신이 일어나지 않아 아침을 먹어야 하니 깨워야겠다 싶어서 처음엔 조심스럽게 이름만 불렀는데 평소엔 이름을 불러도 말없이 일어나던 자신이 일어나지 않아 일어나보라며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게는 아니고 아주 살짝, 살짝 친 거라며 황급히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살짝 친 것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깨어나지 않는 자신에 어깨를 붙잡아 흔들어 보았지만 마치 죽은 듯이 자고 있어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급하게 깨웠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듣곤 이치마츠는 제가 꿨던 꿈이라는 공간에서 잠이 들 뻔한 자신을, 제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서 제 잠을 깨워줬다는 게 카라마츠, 그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꿈에서 잠들 뻔한 건가. 이제 정말 괜찮은 거지? 응? 몇 번이나 귀찮게 물어보는 그에 이치마츠는 말없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제 옆에 있는 카라마츠를 밀쳐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거 아닌 거로 꼴값 떨지 마.”
“걱정, 했는데….”
언제나처럼 카라마츠에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며 씻으려는 모양인지 자리를 뜨는 이치마츠에 상처받은 얼굴을 한 그였지만 그래도 평소와 다름없는 이치마츠의 반응에 안심하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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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카라이치라고 썼는데 카라이치가 아닌 듯한 느낌도 들고 갑자기 생각난 내용을 풀어서 쓴 거라 그런가 이상한 거 같기도.. 아무튼 첫글이라도 써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