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정한] 첫만남
“거기 서라, 괴도 로즈!!”
“서라면 서겠어?”
어두워진 시각의 고층 빌딩 안, 넓지 않은 복도를 가볍게 뛰어다니며 저 멀리서 뒤쫓아오는 경찰들을 보던, 괴도 로즈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자는 그들에게 비웃음을 날리곤 새하얗게 보이지만, 연분홍색의 정장을 입고 단정하게 새빨간 장미를 연상시키는 넥타이까지 맨 채, 망토를 펄럭이며 옆으로 가는 길로 꺾어 들어갔다.
“하, 괴도 로즈! 그쪽은 막다른 길! …인데?”
앞을 이끌고 있던 반장이 아주 당당한 얼굴로 쩔쩔매고 있을 괴도 로즈를 향해 손가락질했지만, 그곳은 막다른 길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복도와 이어져 있던 새하얀 벽과 갈색의 복도엔 휑한 바람만이 불고 있을 뿐, 반장을 따르고 달려왔던 경찰들은 머리를 쥐어 잡으며 또 놓쳤다고 한탄했다. 그렇게 다들 안타까워하는데 오직 반장만이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반장님..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시무룩해 하고 있던 신입 한 명이 매서운 눈으로 막다른 길을 살펴보는 반장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반장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천장에서 시선을 멈췄다.
“천장이 뭔가 이상한데.. 이봐, 사다리 좀 가져와 봐!”
반장의 지시에 축 처져 있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네! 힘차게 외치곤 서둘러 사다리를 가져왔다. 반장은 사다리를 시선을 뒀던 천장의 밑에 두라고 한 후, 누가 올라가 한 번 두 손으로 판을 드는 듯이 밀어보라고 했다. 반장의 지시에 사다리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재빨리 올라가 조심스레 천장을 두 손으로 미는데 순간, 네모난 모양의 선이 보이면서 천장으로 가는 길이 뚫리게 되었다. 반장은 됐다, 는 생각을 하며 씩 웃고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괴도 로즈는 분명 저 천장을 통해 들어갔을 거다! 천장을 통해 나가는 곳으로 출동한다!”
“네!!”
반장의 지시대로 우두두하고 경찰 사람들은 반장을 따라나섰다. 바람 한 점도 불지 않던, 조용했던 공간 속에 막다른 벽에 뭔가 걸쳐진 듯 펄럭이더니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연분홍빛, 벚꽃과도 같은 색의 망토가 나오면서 망토 뒤로 경찰들이 그토록 잡으려 했던 괴도 로즈가 나타났다. 괴도 로즈. 몇 년 전부터 분홍색의 보물들만 훔쳐가는 괴도. 훔치기 전에는 언제나 예고장을 날리며 경찰들을 따돌리고 보물을 쟁취한다고 한다. 잘 잡히지 않아 애를 먹어 경찰들에게는 싫음을 받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는 꽤 인기가 많아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랑받는다고 한다. 나이는 불명에 성별은 여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신사적으로 여자든 남자든 마음을 다 훔쳐버리는 것에 다들 괴도 로즈의 성(性)이 무엇일까, 혼란스러워한다. 괴도 로즈에게 또 다른 비밀이 있다면, 아무도 괴도 로즈의 실제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분홍색의 보물만 훔쳐가 버리는 그녀에 프랑스어의 rose, 분홍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누가 그 별명을 붙였는지 경찰이 그녀를 쫓다가 그렇게 불렀을까, 그 괴도를 지켜보던 일반인 중 누군가가 불렀을까, 그것은 아직도 모르는 채이다.
“반장님도 참, 너무 머리를 굴리신다니까?”
괴도 로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뚜벅뚜벅, 낮은 굽의 새하얀 구두를 신고서 복도를 걸어나간다. 복도에 나온 바로 앞에 있는 건물 밖의 유리창에 선 괴도 로즈는 왼쪽 눈만 가려낸 새하얀 나비를 형성하는 가면 사이로 비치는 에메랄드빛의 눈동자를 굴려 고층의 건물의 밑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내려갈 맛이 나겠네.”
괴도 로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 앞에 있는 유리에 손바닥을 살짝 대고는 앞으로 밀었다. 살짝 민 거뿐인데도 단단했던 유리가 원 모양으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밖으로 기울어지면서 떨어지는 것이다. 괴도 로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유리 위에 올라타 센 바람을 맞으며 내려갔다. 아마 이곳에 미리 와 탈출할 준비라도 해둔 모양이었다. 센 바람에 가면이 벗겨질까, 이마가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일까, 앞머리를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유리 바닥을 짚어 적당한 거리가 될 때까지를 기다리던 괴도 로즈는 땅에 닿기 500m 지점에서 길게 뻗어있던 나무의 수풀로 몸을 던져 뛰어들었다. 지금쯤이면 경찰들 대부분은 괴도 로즈의 속임수에 넘어가 옥상으로 갔을 것이고, 건물의 앞문과 뒷문을 지키는 경찰도 없을지 모른다. 그 가정하에 괴도 로즈는 제 운을 믿고 뛰어든 것이다. 다행히 후문 쪽에 우거진 나무가 많이 있던 덕으로 안정적이게 착지에 성공해 그대로 자리를 뜬 덕분인지 후문에 몇 안 된 인원으로 배치된 경찰들이 괴도 로즈를 눈치채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오늘 달이 밝아서 그런가, 더 빛나 보이네!”
괴도 로즈는 어느새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로 들어서 제 위에 떠 있는 달을 향해 제가 훔쳐온 핑크 오팔을 들어 보였다. 연한 분홍색에 무지개가 생각나는 빛이 기분 좋게 만들었다. 화려한 장식으로 겉을 두르고 그 안에 물방울 모양으로 박혀있는 핑크 오팔. 괴도 로즈는 핑크 오팔을 한 손으로 잡아 쥐고는 씨익, 웃으며 더욱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몸을 틀어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긴 했지만 제 앞에 비친 검은 물체에 괴도 로즈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곤 뒤로 점프하면서 걸음을 쳤다.
‘고개를 아래로 하고 있어서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신사적인 내 이미지가 망가졌을 테니까. 괴도 로즈는 아직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인상을 찌푸린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에 안심하며 안정적인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괴도 로즈는 누구일까, 저를 어떻게 뒤쫓아온 경찰일지, 우연히 이곳을 걷고 있던 시민일지, 호기심이 가득한 마음을 억누른 채 제 앞에 선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큰 키도 아니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고개를 들어야만 얼굴을 볼 수 있는 키의 남학생으로 10대 후반의 나이인 것을 알아챘다. 괴도 로즈는 늦었지만,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면을 고쳐 쓰고는 매너 있게 손짓으로 인사하며 허리를 숙였다.
“만나서 반가워, 소년?”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하던 괴도 로즈는 그를 올려다보며 신사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한 듯한 그의 모습을 보곤 제 매력에 빠진 것인가, 자신만만해하며 숙였던 허리를 펴 보이는 괴도 로즈였다. 괴도로즈는 두르고 있던 망토를 펄럭이며 그의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알지도 모르지만, 괴도 로즈라고 들어본 적은 있겠지?”
그게 바로 나야. 씨익, 웃어 보이는 괴도 로즈는 그리고 이 늦은 시간에 학생이 돌아다니면 남자라도 위험하다고? 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걸치고 있던 망토를 제 몸에 감싸더니 펑, 하는 소리와 연기 사이로-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괴도 로즈가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흠칫 몸을 움직이는 그. 그는 바람과 같이 사라진 괴도 로즈에 서둘러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괴도 로즈로 보이는 것은 찾아지지 않았다. 깨끗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뭔가 다짐한 듯 서둘러 자리를 뛰쳐나갔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뉴스를 통해 괴도 로즈의 예고되는 카드가 날아오는 걸 알아보고, 보물을 훔쳐가 어느 루트로 갈지 예측하면서 항상 가져온 보물에 기뻐하는 괴도 로즈 앞에 나타나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괴도 로즈는 처음엔 만난 적이 있던 소년의 그에 최대한 신사적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괴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를 남긴 채, 첫 만남 때처럼 자리를 떴지만, 언제나, 언제나, 제가 올 곳을 예상하며 제 앞에 나타나는 그에 괴도 로즈는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고 결론을 지었는지 한 번 들어보자는 식으로 처음으로 왜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이며, 도대체 자신의 도망치는 루트를 어떻게 파악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 날 만났던 이후로 괴도 로즈의 모습에 반했다며, 괴도 로즈가 훔치는 루트나 다른 것들을 빠짐없이 확인하면서 오직 관찰력만으로 혼자 보물을 훔치고 기쁨을 만끽할 때만의 장소와 시간을 찾아와 파악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괴도 로즈는 무표정인 듯한 얼굴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면서 미소 지었다.
“보기보다 괜찮네. 관찰력도 뛰어나고. -그 경찰들도 못 잡는 나를, 이렇게 따라와서 신고하는 것도 아니고 제자로 받아달라니. ……좋아, 제자로 받아줄게. 스승으로서 제자의 이름은 알아야겠지?”
“…안정한. 그게 제 이름입니다, 스승님.”
끈질기게 괴도 로즈 앞에 나타나 제자가 되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한 끝에, 괴도 로즈가 그, 정한이 마음에 든다는 듯 제자로 받아들이자 정한은 잠시 말도 안 되는 식으로 지금의 현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완벽하게 정신이 든 것은 괴도 로즈에게서 스승이라는 호칭을 들은 뒤로, 정한은 제 이름을 말하며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괴도 로즈를 향해 말했다.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직접 듣게 되니 괴도 로즈는 짜릿한 느낌을 받으며 이것이 제자를 얻게 된 스승이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얼굴에 보이지 않도록 꾹 눌러 담고는 멋지게 망토를 펄럭이며 그에게 외쳤다.
“내 제자의 특혜로 말해주도록 할까! 내 진짜 이름은 한유라. 잘 부탁한다고, 제자군?“
이것이 바로 괴도 로즈, 한유라와 그녀의 제자, 안정한의 첫 만남이자 사제관계를 맺게 된 날이다.